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민족주의가 무조건 잘못됬다는 인식... 다시 생각해보는 역사.. 일본이 독도와 동해를 차지하고 중국이 이미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세계에 인정을 받고 있는 지금... 과연 민족주의란 불필요한가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일본이 가야하는 길 (한글)
독일과 일본 두 나라는 과거 인류 역사에 큰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독일에는 있지만 일본에는 없는 것!
바로 '과거에 대한 책임'이다.
이에 독도,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눈TV] 동해의 보석, 독도에 가다
(서울=News1) 정윤경 박선우 기자 = 대한민국 국민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뭉쳤다.
눈TV는 8월 18일부터 1박 3일간 '독도 결혼식'을 올린 커플과 '독도 스타일' 플래시몹을 선보인 학생들을 동행취재 했다.
쌀 화환으로 알려진 나눔스토어의 김인환 부사장은 "영국의 신문에 이명박 대통령 사진과 함께 'South Korean leader visits Japanese islands(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섬을 방문했다'란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며 "외국에선 독도 표기의 80% 이상이 '다케시마'와 'Sea of Japan'으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번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독도 방문에 대한 의의를 밝혔다.
첫 번째 이벤트는 '독도 결혼식'이다.
지난 19일 이성준(32), 한아름(26·여)커플과 천정현(41), 임지현(26·여)커플이 국내 최초 독도를 배경으로 식을 올렸다.
'독도 결혼식'을 위해 두 커플과 관계자들은 씨플라워호에 승선해 독도 접안을 시도했으나 거센 파도의 벽에 부딪혀 접안에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독도를 배경으로 배 갑판과 객실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이날 함께 배에 승선한 독도아카데미 대학생들과 독도 여행객 250여 명의 하객은 선상에서 두 커플의 결혼을 축복했다.
두 번째 이벤트로 '독도 아카데미' 학생들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독도 스타일'플래시몹을 선보였다.
앞서 19일 이들은 독도에서 '독도 결혼식'과 함께 '독도 스타일'을 선보이려 했으나 접안에 실패하며 다음날인 20일 울릉도에서 플래시몹을 선보였다.
짧은 일정 기간 동안 어렵게 시간을 내 정동진에서 연습까지 마친 학생들은 거센 파도의 벽에 부딪혀 독도 접안에 실패하자 다소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나긴 일정을 마친 학생들은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 하는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권유진 학생(여·22)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인 만큼 그들이 우기기 식으로 우리 영토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 역시 '독도는 우리땅', '일본 그러지 마라'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외로워서 붙여진 이름 '독도'(獨島). 우리 국민의 열띤 사랑이 모이는 곳, 독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아름다운 섬, 독도 (Beautiful Island, Dokdo) 獨島 竹島 (not Takeshima, Liancourt Rocks)
독도는 우리나라의 동해바다에 있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 이유
1. 독도, 서기 512년부터 한국영토 : 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2.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 : 서기 17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3. 일본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 : 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글자를 써 넣었다.
4. 17세기 말 일본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 1696년 일본정부는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다.
5.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 : 일본 외무성의『 일본외교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있다'라는 실증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6. 일본 내무성,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 일본내무성은 시마네현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임이라고 결정하였다.
7. 일본 최고국가기관(태정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결정 : 일본 태정관 또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 마음에 익힐 것)할 것'이라는 훈령을 내무성에 내려보냈다.
8. 19세기말 대한제국 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정확히 표시 : 갑오개혁 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 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한 위치에 표시하고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하였다.
9.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세계에 공표 : 대한제국은 1900년,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표하였고, 서양 사람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 이라고 호칭하였다.
10. 일본, 1905년 독도 강제 편입 : 일본은 1905년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다케시마'로 명명하였다.
11. 연합국,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 발표 :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5년,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 시켰다.
12.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규정 : 1950년 연합국은 다시 한번, 독도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라고 밝혔다.
13. 연합국, 샌프란시스코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 누락 : 미국은 일본의 맹렬한 로비로 인해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를 누락하고 말았다.
14. 유엔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 : 1950년 유엔군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여, 한반도와 함께 방위할 수 있도록 했다.
2012년 10월 11일 목요일
독도스타일- 위안부 할머니 위로와 일본의 침략적 망언규탄
일본의 독도주장은 거의 전쟁선포와 같은 위험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일본의 불법적 독도주장의 핵심은 원천무효인 한일병탄과 망국적 한일협정입니다.
그나마 문재인 후보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공약을 제시한 것이 다행입니다.
정치권의 안일한 독도대응을 질타하면서 일본의 독도망언으로 가슴이 아프신 위안부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게 독도스타일을 바칩니다.
독도걸스와 함께 독도 플래시몹!
15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중앙무대에서 독도 프로젝트그룹 '독도걸스'와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독도 플래시몹' 행사를 열었다.
※플래시몹(flash mob):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과 전자 메일, 휴대전화 등의 연락을 통하여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놀이나 행동을 취하고는 금세 제각기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한국문화 최고의 창작품 한글
한글의 탄생, 한글의 조형원리, 한글에 대한 해외 학자들의 인식 등을 통해서 한글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고, 한글이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되고 있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반크 21C 세종대왕 프로젝트 사이트(http://sejong.prkorea.com)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독도, 독도를 향한 마음 담은 활동 제안
독도는 20세기 초 그 어떤 곳보다 앞서서 일본에 의해 강제 점령 되었던 우리나라의 섬입니다.
독도를 향한 일본 정부의 신 제국주의적인 사관인 신 정한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독도를 향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세계속에 펼쳐나가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독도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수 있을지 고민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반크가 10가지 활동을 제안합니다.
이어도, 이 섬은 어느 나라의 영토일까요?
위산다오 287km
마라도 147km
만약 어떤 한 섬이 두 나라 중 한 나라와
약 2배나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이 섬은 어느 나라의 영토일까요?
...
그 어떠한 사실을 비교해 본다 할지라도
이어도는 대한민국의 영토 입니다
아시아의 평화와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일에 함께해 주세요!
이 일에 앞장서는 당신이 아시아의 '피스메이커' 입니다
독도는 왜 일본땅이 될 수 없는가
독도가 오래전부터 조선땅임을 증명하는 단서들입니다. 1905년 전에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지 않았다는 일본인들의 말이 거짓말임을 입증해 주는 동영상입니다.
일본인이 '독도 한국땅' 지도 공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고(古)지도 소장가인 한 일본인이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돼 있거나 일본 영토로 표기돼 있지 않은 고지도 여러 장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오사카의 공립학교 교사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고지도를 수집해 온 구보이 노리오(70)는 28일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한국과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놓고 외교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면서 "더 이상 진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인이지만 지도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보이가 공개한 지도 중에는 '수정소학 일본지도'(修正小學 日本地圖)가 가장 의미가 크다. 국민에게 자국의 영토를 정확하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작성한 지리교과서에 게재돼 있는 지도로 문부성이 1901년에 발간했다. 문부성의 검정을 거친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교과서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정영미 박사는 "이 지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도에는 일본 영토를 상세하게 표시해 놓았지만 울릉도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 '조선' 땅임을 분명히 했다. 독도는 그려 놓지도 않아 당시만 해도 자국 영토로 주장하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지난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영토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이 교과서는 일본이 제국주의화하던 시절에 제대로 된 영토교육을 시킨 사례로 꼽힌다.
'대일본국 전도'도 의미가 있다. 일본 내무성이 1880년 11월에 발간한 지도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본 영토를 표시한 지도다. 이 지도에는 오키나와까지 게재했지만 독도와 울릉도는 싣지 않았다. 이 지도에는 당시 도쿄와 교토를 상세하게 표기할 정도로 정밀도가 뛰어난 지도인데도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점을 인정해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노기와 가오루가 1895년에 제작한 '일본 전도'에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운 영토로 당시 일본이 복속시킨 타이완을 새 영토라고 표기했지만 독도는 표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이 제작한 지도 이외에 구보이는 독도는 한국 땅임을 알리는 서양인들의 지도도 공개했다. 이탈리아인 시볼트가 1840년에 작성한 한국과 일본 지도에는 한국을 노란색으로 2개의 울릉도와 같은 색으로 칠했고, 일본은 갈색으로 표시해 구분했다.
한편 독립기념관도 이날 '독도는 한국땅'임을 입증하는 근대 일본의 역사·지리교과서 7점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직접 제작한 초·중·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인하는 최초의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일본 문부성이 1905년 직접 만든 '소학지리용신지도(小學地理用新地圖)' 1886년 문부성이 검정한 '일본사요(日本史要) 상권' 1900년 문부성이 검정한 '소학지리(小學地理) 1·2권' 1887년 오카무라 마쓰타로가 편찬한 '신찬지지(新撰地誌) 1권' 1878년 오쓰키 슈지가 지은 '일본지지요략(日本地誌要略) 1·4권' 등 교과서 5권과 1888년 아오키 쓰네사부로가 지은 '분방상밀 일본지도'(分邦詳密日本地圖) 1925년 도쿄 개성관이 제작한 '표준일본지도'(標準日本地圖) 등 지리부도 2권이다.
한국의 유산 (037) 조선 목민관의 상징, 청백리
조선시대. 가장 바람직한 목민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청백리"
염근리라고도 불리는 청백리는 품행이 단정하고 일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청렴한 관리, 깨끗한 관리를 의미했다.
"고려사"에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다는 고려시대 최영장군을 비롯해 유석, 왕해. 임육석, 최석 등 많은 인물이 청백리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시대 배출된 청백리는 총 217명. 우리가 익히 아는 조선의 3대재상 황희. 맹사성, 이원익을 비롯해 퇴계 이황, 김장생. 허종,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 서애 유성룡과 악학궤범을 지은 성현도 역시 청백리였다.
목민관의 참 도리를 가르친 청백리의 삶. 그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공직자의 자세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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