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8일 금요일

‘국사 필수과목’ 홍보대사 ② 첼리스트 정명화


“음악과 역사는 시대의 쌍둥이 … 국사 공부, 세계 무대 힘 됐다”

첼리스트 정명화(67·사진)씨는 고등학생 3학년 때 미국으로 떠났다. 1962년이었다. 중·고교 시절 역사 수업을 싫어했던 그다.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었어요. 학생 때부터 외부 연주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먹곤 했죠. 수학은 수업을 한 번만 들으면 바로 알아듣겠는데 역사는 따라잡는 데 한참 걸렸어요. 수학은 숫자로 환상을 실현하는 예술 같았지만 역사는 억지로 외워야 했거든요.”

외국 생활은 그에게 전환점이 됐다. 밖에서 지내다 보니 안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선생님이 시켜서 외웠던 국사 지식이 되레 힘이 됐다.

 “당시 미국에선 ‘한국에서 왔다’ ‘한국사람이다’ 아무리 말해도 몰랐어요. ‘한국에선 중국어를 쓰느냐’는 엉뚱한 질문만 받곤 했죠.”

 유학 때 정씨는 어린 시절 배웠던 한국사를 떠올렸다. 미국인에게 한국을 설명할 때 역사가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도 꽃피워왔던 우리 문화를 다시 기억하게 됐죠.”

 정씨가 ‘국사 필수과목 홍보대사’로 나선 배경이다. 그는 196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40주년을 훌쩍 넘긴 ‘국제화 1세대’다. “외국 역사는 천천히 나중에라도 배울 기회가 많아요. 한국사는 어릴 때 배워 놓지 않으면 기회가 적다는 걸 외국 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깨달았어요.”

 연주자도 역사를 알아야 할까. 정씨의 판단은 “당연히 그렇다”다.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걸 공부하는 겁니다. 음악 또한 사람의 표현이죠. 연주자도 역사에서 느끼고 자극받는 게 무궁합니다.”

 정씨는 레너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등 전설적인 첼리스트에게 배웠다. “피아티고르스키 선생님은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유럽으로 나와, 술집 연주부터 시작했어요. 결국 베를린필의 수석 연주자가 됐죠. 스스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설명할 때도 그런 배경이 묻어 나왔어요.”

 정씨는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체제에서 숨죽여 살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음악에서 나오는 억압의 느낌과 희망의 빛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음악과 역사는 시대의 쌍둥이라는 설명이다.

정씨는 올여름부터 매년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는다. 세계 음악인들에게 한국을 설명해야 하는 위치다.

 “세계 각국 연주자들이 음악제에 참여합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외국 음악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죠. 한국 역사에 다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네요. 하하하.”

 그는 “우리 세대가 학교를 다닐 땐 지금보다 음악 수업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나이 들고도 클래식 음악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며 “어린 시절 배운 것은 어딘가에 꼭 남아 있는 만큼 국사교육도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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