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9일 화요일

한민족의 진실된 역사와 문화


  한국인이라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역사의 참모습은 후세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다. 중국과 일본의 잦은 침략의 전화(戰禍)속에서 수많은 사서(史書)가 불타 없어져 버렸고, 또한 그들의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맥이 단절되고 뿌리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민족은 철저하게 중국중심주의를 제창하였다. 자기들 주위의 민족을 오랑캐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기술하였다. 이웃 나라의 역사는 철저하게 왜곡하고 부정하였다.


  그리하여 사마천의 <사기>를 위시한 중국의 25사는 한국의 역사를 다만 중국의 방계역사로 취급하여 한민족을 고의로 폄하(貶下)하고 때로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 은폐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본의 제국주의는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이후 한민족을 영원히 지배하기 위한 망상 속에서 사서(史書)를 강탈하여 불태워버렸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였다. 이는 전세계의 어떤 제국주의 국가에서도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식민지 정책이었다.


  그리하여 일제는 1938년 총35권의 조선사를 완성하여 의도적으로 왜곡된 역사를 주입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 주요 내용은, 첫째 ‘환국, 배달국, 고조선’시대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유구한 고대사를 말살하여 역사의 뿌리를 말살시킨 것이며, 둘째 한민족의 활동무대였던 중국 북동부와 만주를 한민족사에서 지워버리고 한민족의 역사무대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해 버린 것이며, 셋째 한민족은 무능하고 동족상잔의 나쁜 근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추진력조차 없는 열등한 민족이므로, 영원히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식의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한민족의 진실 된 역사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철저하게 왜곡되고 날조된 내용들이다.


  한민족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이했다. 이 때 역사정립을 주장하던 몇몇 선각자들의 외침이 있었지만, 건국 초기의 혼란과 역사의식의 결여로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조작했던 조선사편수회 편수관으로 참여했던 이병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대학교 사학과(史學科) 교수로 자리잡고 또 문교부 장관을 지내는 등, 민족을 배반하고 시세에 영합했던 자들이 대학강단에서 잘못된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역사정립은 요원해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역사가 세계에 소개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한민족의 진실된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나라는 환국(桓國)이었다. 환국이란 ‘광명의 나라’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첫머리를 보면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하여 환국(桓國)이 소개되어 있다. 근래에 발견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내용을 보면 환국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12개의 연방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3301년 동안 국가가 지속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놀랄만한 사실은 서양문명의 기원이라고 알려진 수메르 문명이 환국의 이주민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수메르인들은 B.C.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진출하여 우르(Ur), 우르크(Urk), 라가슈(Lagash), 움마(Umma) 등의 도시국가를 세우고 이후 오리엔트 문명의 뿌리를 이루었다고 하는데『The sumerians』와『History begins at sumer』를 쓴 Samuel. N. Kramer 교수는 수메르인이 동방에서 왔다고 주장하였다. 후에 이 설은 다그라스씨와 C.H.고든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또한 수메르인들은 ‘black headed people’이었으며, 대영백과 사전에는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그 어근을 같이하는 교착어라고 기술하고 있다.


  수메르의 문화 속에는 ‘Ziggurat’이라는 인조산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하게 받드는 군사부 일체 제도가 있었으며, 60진법이 시행되는 등 동방 한민족의 문화와 유사한 내용들이 대단히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미루어 보면, 환국의 말기에 인구가 증가하고 시베리아의 날씨가 추워지면서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을 때, 서쪽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 되었고 반대로 동쪽의 베링해협을 넘어 알래스카를 거쳐간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도 갈데아 우르(Ur) 지방에서 태어나 강을 건너 서쪽의 가나안에 정착했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동쪽에서 서로 이동하는 인류의 이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의 하나이다.


  한민족이 환국의 정통을 계승하여 세운 최초의 나라는 배달국(倍達國)이었다. <삼국유사>에는 환웅 천황께서 백두산에 강림하여 신시(神市)를 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배달국의 건국은 중국민족과 한민족의 역사가 나뉘는 분기점이다. 중국민족은 중국의 감숙성에서부터 동진(東進)하여 진출하였고 한민족은 만주땅에서부터 서진(西進)하여 서쪽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배달국의 14번째 환웅이었던 자오지 환웅은 중국의 황제와 하북성의 탁록에서 마주쳐 10년간에 걸쳐 73회의 대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이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이 배달국 시대에 한민족은 중국땅에 진출하여 후세에 대단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서계(書契)문자와 팔괘(八卦)의 창시자로 알려진 태호(太皥)복희(伏羲)씨, 동양의학의 창시자이며 농사법을 발전시킨 염제신농(炎帝神農)씨 등은 중국민족이 아닌 한민족의 조상들이다.


  배달국의 영토는 만주를 위시해서 중국의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지역을 포함하는 대제국이었다. 이 배달국 시대는 18명의 환웅에 의해 1565년간 지속되었다.


  배달국의 정통을 계승한 나라는 조선국이었다. 고조선은 일본의 의도적인 역사말살 정책에 의해 철저하게 부정되어 왔었는데, 실제로는 고조선은 2096년 동안이나 동북아의 패권을 차지하였던 역사의 대국이었다. 고조선의 말기에 당요(唐堯)가 한민족과의 갈등 속에서 중국으로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특히 고조선은 소련 과학원의 역사언어철학 연구소에서『古朝鮮』이라는 책자를 출간함에 따라서,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한국의 국통은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대진국으로 이어지면서 만주를 주무대로 역사를 이어왔으며 이후 고려, 조선으로 그 맥이 이어지면서 한반도로 그 영역이 축소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댓글 1개:

  1. ㅋㅋㅋㅋㅋㅋㅋㅋ 서자단군을 대한의 역사로 주장하는 니가 더웃긴다. 다른 역사는 다 말살한 일본이 왜 하필 단군조선은 남겨놓았는가?단군의 군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조선을 대한의 역사라고 하는 니녀석은 얼마나 한심한가? 단군이 대한의 적통이라면 무도한 불효패륜아에게나 줄수있는 칭호가 군이다. 광해군 연산군 같은 군이다. 니가 정역을 안다면 고구려를 자랑스러워 하지도 조선을 대한의 역사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의 국명중에 조선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규원사화 조판기를 보아도 옥녀실색 백귀둔찬, 백인종의 나라라는 것을 알것인데. 도대체 서자단군을 그리도 빨아대는 이유가 궁금하다.대한의 전신은 길도에 베풀선자 됴션이라는 사실을 참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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